2009년 06월 19일
몸매,

_ 제 주위의 지인들에 의하면, 제가 선호하는 타입의 여성은, '몸매 좋은 여성'인 것 같습니다. 다분히 귀납적인 추론인지라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또 그리 많지 않은 표본들로 과연 귀납적 일반화를 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뭐랄까, 단순히 운이 좋았어, 라고 해명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언제가 청바지 위로 접힌 뱃살을 보고 이별을 결심했던 전적도 있으니 무작정 부인할 일도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제가 꽤나 마른터라 조화와 대칭 측면에 있어서 살이 좀 있으신 분들에 대해선 호감을 잘 가지지 못하는 터라, 좋은 몸매라는 것이 '난 말랐으니 다소 풍만한 편이 좋아'가 아니라 정말 '나이스 바디' 쪽임이 분명하고요. 사실 제 몸매를 생각해보면 이건 염치 없는 걸 넘어서서, 배은망덕한 취향이라고 생각하니 몸매 좋은 사람을 좋아하면 안될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참 염치 없는 심정이긴 합니다.
_ 사실, 스무해를 살아오면서 느끼건, 연애에 있어서 몸이 중요한 시점은 '몸매'로 매력을 발산할 때라기 보단, 기억의 주체로 '몸'이 등장할 때라는 것입니다. 연애의 주체, 기억의 주체로서의 몸이란 것은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몸을 기억하고 담아두곤 합니다. 당신의 입맞춤, 당신의 손길, 당신의 숨결과 당신의 목소리에 몸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민첩하게 판단하며, 열성적으로 움직입니다. 당신의 몸 하나하나를 기억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과 부재 앞에서도 몸으로 당신을 그리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_ 그래서 영속적인 당신의 부재가 결정되고, 그리고 그 것이 지속되어 명확한 기억이나 당신과 연관된 습관들이 흩어져 버려도, 문득 문득 내 몸이 여전히 기억하는 당신의 몸에 놀라곤 합니다. 마치 삼년만에 우연찮게 만진 누군가의 기타 플랫 위에서, C 코드가 자연스럽게 쥐어지는 것처럼 그리움이 사라졌지만 문신처럼 남은 기억에, 아직도 이걸 기억하는구나, 하고 놀라곤 합니다. 오른손을 놀리면, 드르릉, 기타에선 소리가 납니다.
_ 당신에 대한 몸의 기억에 있어 내 스타일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애에 있어 몸의 문제는 결국 터치의 문제고, 이는 당신이란 대상을 전제로 합니다. 당신만 선택할 수 있고, 당신의 습관과 취향에만 맞춰진, a la carte. 그렇기 때문에 내 몸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아, 깜빡하고 혹은 너무 바빠서 지나쳐버린 끼니의 숫자보다 짧은 만남의 파트너가 더 많은 사람 일지라도, 아마 그 사람은 그 많은 당신을 당신 하나로 기억할테지요. 결국 내 몸이 기억하는 건, 당신입니다.
_ 당신을 내 몸에서 도려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몸조차 잊을만한 까마득한 시간이 준비되거나, 혹은 다른 기억으로 덮어씌우는 수 밖에 없습니다.
_ 그래서 또 다른 당신을 만납니다. 두근거림부터 시작해서, 살포시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앞섶 사이로 슬쩍 가슴을 훔쳐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간 만큼, 그 시간 안의 당신 만큼 차곡차곡 당신의 몸은 내 몸 안에 쌓이고, 난, 내 몸은 또 당신을 기억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처음 기타를 잡고 코드 일곱개를 외운게 다였지만, 이젠 코드 일곱개로 시작해 마이너 코드와 세븐 코드 쯤은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힘이 없던 왼손 새끼 손가락에도 조금은 힘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다시 C 코드를 잡아 봅니다. 소리가 조금 더 맑아진 것 같습니다.
_ 아, 그래서 전 좋은 기억을 지니고 싶은 것 뿐입니다. 몸매를 보는 게 아니랍니다. 그렇고 말고요.
# by | 2009/06/19 23:14 | 꿈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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