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0일
〈디스트릭트 9〉, 닐 블롬캠프, 2009.
제목 : 디스트릭트 9(District 9)감독 : 닐 블롬캠프
출연 : 샬토 코플리
개봉 : 2009. 10 . 15.
(아, 다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뭐 생각에 따라선 아닐 수도 있고요.)
_ 어느 날 지구 상공에 외계의 우주선이 나타나 머무르기 시작한다. 오버로드라고 인류가 부르게 된 외계인들은 인류에게 나타나 인류를 더 없는 번영의 시기로 이끄는데......
_ 쯤으로 요약되는 명작 SF 소설이 하나 있지요. SF 소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SF 소설의 '죄와 벌' 쯤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란 소설입니다. 에반겔리온의 인류보완계획이 사실, 1953년에 발표된 이 소설의 마지막, 인류의 의식을 하나로 총체화하여 오버마인드라는 더 높은 진화의 단계로 이끈다, 라는 컨셉을 차용한 것이기도 하고요.
_ 티저 예고편을 접했을 땐 사실 '디스트릭트 9'은 외계인을 빌려 세상을 살짝 비튼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고 본 예고편에선, 어어, 뭔가 예상과 다르지만 보고 싶긴 해, 였습니다. 헌데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른 건 바로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었습니다.
_ '디스트릭트 9'은 '유년기의 끝'의 반대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외계인의 우주선이 지구의 상공에 나타나지만, 그 우주선은 세계 유수의 도시들 대신 아프리카의 남단 '요하네스버그' 위에 나타납니다. 오버로드는 인류에게 스스로 나타나 인류를 이끌지만, 디스트릭트 9의 프런들은 인간들에게 구조되어 오히려 인도적 차원에서 인류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오버로드들은 인류를 갈등과 공포, 질병 등이 사라진 사상 초유의 황금시대로 이끌지만, 프런들은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에 각종 사회 문제를 일으켜 문제를 만들고 말지요. 애초에 인류보다 진화의 앞선 단계에 있던 오버로드와 인류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프런의 차이에 기인하는 탓이지요. 아주 단순히는 소설에서 묘사하는 오버로드와 디스트릭트 9에서 그려지는 프런의 모습만 비교하더라도 그 간극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년기의 끝'의 오버로드는 바로 인류가 그려오던 '악마' 혹은 '사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납니다. 소설은 오버로드들이 인류가 개체성을 버리고 하나의 의식으로 통합되게 만드는 존재이기에, 인류라는 종족 자체의 소멸과 불가분의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의식 차원의 존재의 끝과 시작은 결국 이어져 있는 것이기에 인류의 끝에 나타나는 오버로드의 모습은 인류에겐 공포와 경외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상징의 archy type으로 인류의 시작과 함께 의식의 기저에 계속 존재해 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인류에겐 혐오와 불쾌의 상징으로 의식 기저에 존재하고 있는 '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는 프런의 모습은 그 오버로드와 반대 지점에 서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_ 그렇다고 이 영화가 '유년기의 끝'의 패러디 영화 쯤이란 이야기는 물론 아닙니다. 유년기의 끝과 디스트릭트 9이 갈라지는 지점은 바로 외계인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인간'에서 출발합니다. 유년기의 끝의 잰과 디스트릭트 9의 비커스는 모두 직접적인 외계인과의 접촉과 교류를 하게 됩니다. 전자는 영광스럽게도 오버로드의 우주선에 탑승하여 오버로드들의 母星을 다녀오게 됩니다. 인류가 아닌, 우주적 존재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인류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그리고 인류가 이제서야 겨우 유년기를 벗어나게 되는 것 뿐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오버마인드로 통합되는 인류의 유년기의 끝을 목도하게 됩니다.
_ 하지만 비커스는 프런을 통해 자신이 모르던 존재에 대한 이해를 얻거나, 인류의 보잘 것 없음을 깨닫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비커스는 인류보다 못하다고 판단되는 프런과 우발적이고 강제적인 신체적, 물리적인 과정을 통해 그들과 접촉을 하게 됩니다. 인류보다 우월한 존재인 오버로드란 슈퍼바이저 대신, 디스트릭트 9의 비커스에게는 자신보다 저능하다고 판단되는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그러니까 그런 정신적이고 이성적인 교류를 제공해 줄 수 없는 프런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잰은 오버로드로 나아가지만, 비커스는 프런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지요. 결국 비커스는 충고와 이해를 통한 통찰 대신 직접적인 사건과 경험을 통해 인류의 '유아성'을 목격하고 직접 경험합니다. 자신이 프런이 되고, 이를 통해 프런이 되어 가는 자신을 대하는 인류가 얼마나 저열한지, 얼마나 잔혹한지, 그래서 인류가 유년기의 한복판에 서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깨닫게 되어갑니다.
_ 보통, 이 영화를 보신분들을 이 영화를 '차별'을 중심으로 읽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주노동자, 유색인종, 사회적 약자 등 다수의 '정상인' 혹은 '일반인'이 아닌 사람들, 그래서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말이죠. 분명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전 그보다 광의적인 차원의 메타포를 담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년기의 끝이란 텍스트를 반대로 비틀어서 만들어 놓은, 저열하고, 잔혹하고 유치한 성숙하지 못한 인류의 유아성에 대한 영화로 읽혔습니다. 그리고 표면적인 메타포로서의 '사회적 차별'은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인류의 유아성'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었고요.
_ 사실, 어차피 뜯어보면 유명한 텍스트의 설정을 반대로 뒤집은 액션오락영화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꽤나 흥미로운 생각을 끌어낸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_ 아, 재미도 물론 있었고요. 흥미 진진했어요. (아, 요 한줄이 진짜 리뷰. 위에 쓴 건 다 헛소리)
(2009. 10. 18., 상암 CGV)
# by | 2009/10/20 16:18 | 가슴아픈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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